제노사이드 규탄 ‘미군 분신’에 침묵하는 바이든 < 외교안보 < 기사본문



“역사상 어떤 뉴스 사진도 그 사진 만큼 전 세계에 감정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존 F. 케네디, 1963년 6월 11일 베트남 승려 틱꽝둑의 분신 사진에 대해)


적어도 61년 전의 미국은 한 인간의 분신에 대해 대통령부터 나서 각별한 주목을 표하는 제스처라도 내보였던 나라였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미군 병사의 분신 장면이 선명하게 나온 사진이 소셜미디어에 나돌고 있지만 침묵하고 있다.


 


27일 ​미국 뉴욕의 모병센터 앞에서  열린 분신 미 공군 병사 애런 부시넬을 추모하는 촛불집회에서 한 참가자가 영정 앞에 조화를 놓고 있다. 2024.2.27. 로이터 연합뉴스 
27일 ​미국 뉴욕의 모병센터 앞에서 열린 분신 미 공군 병사 애런 부시넬을 추모하는 촛불집회에서 한 참가자가 영정 앞에 조화를 놓고 있다. 2024.2.27. 로이터 연합뉴스 


지난 25일 워싱턴 주미 이스라엘 대사관 정문 앞에서 “팔레스타인에 자유를!” 외치며 분신한 미 공군 상병 애런 부시넬(25)의 죽음이 미국 사회를 두 개로 가르고 있다. 그의 뜻을 기려 이스라엘군이 작년 10월 7일부터 가자지구에서 자행하고 있는 팔레스타인 민간인 학살극의 중단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있는 한편, 그의 분신을 ‘관심사병’의 자살로 돌리려는 움직임도 있다. 정치권에서는 “반미적인 행동”이라는 규탄까지 나왔다.


부시넬은 분신 몇 시간 전 가까운 친구에게 가자지구의 하마스 땅굴 공격에 미군이 참여했다는 1급기밀를 알고 있다고 말한 것으로 확인됐다. 27일 뉴욕포스트에 따르면 부시넬의 친구는 “그가 24일 ‘우리(미국)가 땅굴 속에 병력을 두고 있었다. 미군 병사들이 살인에 참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뉴욕포스트는 제보자와 부시넬의 친분을 확인했다면서 이같이 보도했다. 이는 부시넬이 분신을 결심한 결정적인 동기였음을 짐작게 하는 주장이다.


조 바이든 행정부는 공개적으로 유엔 안보리의 즉각 휴전 결의안에 반대하는 한편, 이스라엘에 휴전을 종용하는 제스처를 취해 왔다. 미국인 인질의 안전을 위해 일부 미군 병력을 이스라엘에 파견해 놓은 상태다. 뉴욕포스트도 지적했듯이 이 같은 주장은 확인이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1급기밀(top secret)’로 분류된 정보라면 펜타곤이 공개하기 전에는 사실 확인이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제보자는 “부시넬의 실제 임무는 첩보자료를 처리하는 것이었고, 가자 분쟁과 관련한 첩보도 포함됐다”면서 “그는 ‘우리가 현지에 미군 병력을 파견해 많은 수의 팔레스타인인들을 죽이고 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분신 직전 “더 이상 제노사이드(대량학살)의 공범이 되지 않겠다”는 부시넬의 외침과도 일치하는 대목이다.


 


애런 부시텔이 분신한 미국 워싱턴 이스라엘 대사관 앞에서 추모객들이 농성을 하고 있다. '평온한 안식을(Rest in Peace)'이란 말 대신에 '힘 속에 안식을(Rest in Power)'이라고 적힌 피켓이 주목된다. 2000년대 중반부터 이스라엘군에 의해 희생된 청년을 애도할 때 많이 등장해 온 피켓이다. 2024.2.26. AFP 연합뉴스 
애런 부시텔이 분신한 미국 워싱턴 이스라엘 대사관 앞에서 추모객들이 농성을 하고 있다. ‘평온한 안식을(Rest in Peace)’이란 말 대신에 ‘힘 속에 안식을(Rest in Power)’이라고 적힌 피켓이 주목된다. 2000년대 중반부터 이스라엘군에 의해 희생된 청년을 애도할 때 많이 등장해 온 피켓이다. 2024.2.26. AFP 연합뉴스 


미국은 어느 나라보다 군복 입은 젊은이들의 노고와 희생을 각별하게 여긴다. 그러나 부시넬의 분신 이후 주류 사회가 내놓는 반응은 다소 충격적이다. 이스라엘의 가자 침공을 적극 두둔해 왔던 바이든 행정부는 유족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는 데 그쳤다. 카린 장피에르 백악관 대변인은 분신 이틀 뒤인 27일 정례브리핑의 끝자락에 “대통령도 그의 죽음을 알고 있는가? 어떤 반응이 있었는가?”라는 질문에 “대통령도 알고 있다”고 짧게 답했다. 이어 “(부시넬의 분신은) 분명 끔찍한 비극이며 우리의 마음은 유족과 함께한다”라고 말했다. 장피에르는 “국방부와 워싱턴 경찰국이 조사하고 있는 만큼 앞서가지 않겠다”면서 “그날 일어난 일은 끔찍한 비극이었다”고 되풀이했다. 팻 라이더 국방부 대변인도 전날 “분명 비극적인 일이었다”라면서 “로이드 오스틴 국방부 장관도 사건을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을 뿐이다.


부시넬의 분신을 ‘관심사병’의 단순 자살로 돌리거나 ‘정치적 동기’에 초점을 맞추려는 움직임마저 엿보인다. 데이비드 앨빈 미 공군 참모총장은 28일 브루킹스 연구소 대담에서 “공군 차원에서 정치적인 동기에 의한 것이었는지를 들여다보고 있다”라면서 “정치적 항의이건, (정신적) 회복 탄력성의 문제이건 어떠한 자살도 비극”이라고 말했다. 이어 “자살의 원인이 어디에 있건, 표준 조사 과정을 통해 개인의 사생활을 침해하지 않으면서 모든 걸 파악하려 노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미공군 성명은 부시넬의 이름을 적지 않은 채 ‘이스라엘 대사관 근처에서 일어난 사건’으로만 표현했다. 브루킹스 연구소 밖에서는 시위대가 “부시넬의 이름을 말하라, 당장 휴전하라”고 촉구했다.


앨빈 총장은 시위대의 항의가 차단된 뒤 부시넬의 죽음을 단순 자살 사건으로 간주하고 있음을 굳이 감추지 않았다. 그는 “우리(공군)에선 매년 100명의 자살이 일어나고 있고, 우리는 어떻게 이를 줄일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다”면서 “이는 우리가 잃은 공군 병사의 한 명일 뿐이고, 우리는 유족과 해당 부대를 살펴보면서 사건 배후에 어떤 맥락이 있는지, 어떤 교훈을 도출할 수 있는지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팔레스타인에 자유를” 외친 부시넬의 메시지를 간단히 지우고 있는 것이다. 이날도 워싱턴과 뉴욕을 비롯한 미국 내 곳곳에서 가자지구 학살에 반대하는 시위가 벌어졌지만, 바이든 행정부는 애써 침묵하고 있다.


 


애런 부시넬이 지난 25일 워싱턴의 이스라엘 대사관 정문 앞에서 선 채로 분신을 하고 있다. 그는
애런 부시넬이 지난 25일 워싱턴의 이스라엘 대사관 정문 앞에서 선 채로 분신을 하고 있다. 그는 “팔레스타인에 자유를”이라고 여러 차례 외치다가 시멘트 바닥에 쓰러졌다. 페이스북에서 지인들이 유포하고 있는 사진이다. 


톰 코튼 상원의원(공화·아칸소)은 오스틴 국방장관에 보낸 공개서한에서 “부시넬은 극단적이고 반미적인 견해를 갖고 있었던 게 분명하다”면서 “이러한 인물이 군 복무를 하도록 허용했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를 제기한다”고 주장했다. 코튼 의원은 육군 대위 출신으로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 참전 군인이다. 부시넬은 분신 전 소셜미디어에 생중계한 음성에서 “나는 극단적인 항의 행동에 나서려고 한다. 하지만 팔레스타인에서 식민주의자들(이스라엘군)의 손에서 주민들이 경험한 것에 비교하면 전혀 극단적이지 않다”고 말했었다.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무소속·버몬트)의 평가는 사뭇 대비됐다. 유대인이기도 한 샌더스 의원은 가자 사태 이후 바이든 행정부에 대해 “미국의 지원 물자가 가자지구에서 민간인을 죽이는 데 사용되지 않도록 하라”고 요구하는 한편, “이스라엘은 하마스 테러리즘을 파괴할 권리가 있다”는 어정쩡한 입장을 취해왔다. 샌더스는 그러나 지난 26일 뉴스위크에 “끔찍한 비극이었다”라면서도 “가자지구에서 일어나고 있는 끔찍한 인도주의적 재앙에 대해 많은 이들이 느끼고 있는 절망의 깊이를 웅변했다”라는 의미를 부여했다. 이어 “미국은 갈수록 고립되고 있다. 국제사회는 네타냐후(이스라엘 총리)가 하고 있는 게 인도적 재앙이라는 걸 알고 있음에도 미국이 세계에서 이스라엘 편에 선 몇 안 되는 나라의 하나라는 게 끔찍하다”고 털어놓았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남부 중심도시 칸 유니스 주민들이 14일(현지시간) 이스라엘군의 폭격으로 무너진 건물 잔해 더미를 헤집고 있다. 이스라엘군은 가자지구 북부를 거의 장악한 데 이어 최근에는 남부에서도 지상전을 확대하고 있다. 2023.12.14. 로이터 연합뉴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남부 중심도시 칸 유니스 주민들이 14일(현지시간) 이스라엘군의 폭격으로 무너진 건물 잔해 더미를 헤집고 있다. 이스라엘군은 가자지구 북부를 거의 장악한 데 이어 최근에는 남부에서도 지상전을 확대하고 있다. 2023.12.14. 로이터 연합뉴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부시넬은 분신 몇 시간 전 독립언론 매체를 비롯해 언론사에 ‘제노사이드에 반대하며(Against genocide)’라는 제목의 글과 자신의 분신 장면 생중계 동영상 링크를 보내면서 “나의 주장을 그대로 보도해 줄 것”을 요청했다. 그는 군복 모자를 눌러쓴 뒤 군복차림의 온몸을 가연성 액체로 적신 뒤 선 채로 분신, 1분 동안 “팔레스타인에 자유를”이라는 구호를 여러 차례 외친 뒤 시멘트 바닥에 쓰러졌다. 대사관을 경비하던 비밀경호(SS) 요원들이 진화에 나섰지만, 살려내지 못했다.


타임스는 부시넬(25)이 공군 입대 전 매사추세츠주 케이프 코드 베이의 한 기독교 종교단체에서 활동해왔다고 전했다. 종교적이고 보수적인 분위기에서 성장했지만, 진보적인 무정부주의 행동가로 변모했다. 무주택 주민 돌봄센터에서 자원봉사를 하면서 빈곤 퇴치와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말을 주변에 자주 해왔다.


가톨릭교도 고딘디엠 정권의 독재와 불교 탄압에 저항했던 틱꽝둑(20)의 분신은 20세기 인류사에서 정의와 인권에 대한 강한 메시지로 기억된다. 케네디 행정부는 고딘디엠 정부를 뒤집은 쿠데타를 지원했다. 미국은 그러나 이후 베트남전쟁에 발을 들여놓음으로써 수만, 수십만의 베트남인들이 화염 속에 숨지게 했다. 케네디 그나마 역사적 명언으로 틱꽝둑의 분신을 기리는 모습이라도 보였다. ‘바이든의 미국’은 이제 자국 병사가 분신으로 외친 메시지마저 외면하는 국가로 변했다.


 


불교 승려 틱꽝둑이 1963년 6월 11일 베트남 사이공 한복판에서 고딘디엠 정부의 압제와 불교탄압에 항의하며 안은채로 분신하고있다. 포토 저널리스트 맬콤 브라우니가 촬영한 사진은 이제 저작권없이 공유되고 있다. 위키페디아
불교 승려 틱꽝둑이 1963년 6월 11일 베트남 사이공 한복판에서 고딘디엠 정부의 압제와 불교탄압에 항의하며 안은채로 분신하고있다. 포토 저널리스트 맬콤 브라우니가 촬영한 사진은 이제 저작권없이 공유되고 있다. 위키페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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